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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그림책

겨울, 나무

220101

삶은 은유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뜨는 아침해가 1월 1일이라고 해서 달라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가로 강가로 산꼭대기로 일출을 보러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은유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일출을 맞이하며 부지런한 자신을 칭찬하고 희망찬 한 해를 기원한다. 둘쨋날에 해도 되고 이십일쯤 아니 이백일쯤 되었어도 해야되는 그 일들을 굳이 오늘 하는 이유는 '첫번째'가 주는 비장함과 소중함이다.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자리다.

 

 

영하 15도의 산 속에서 시작하는 하루는 바닷가보다 늦다. 벌써 동해의 일출이라며 여기저기서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왔다. 이곳은 아직 조짐만 보이는데 남들은 다 맛본 그 일출을 기다리며 조바심이 나는가 물었다. 이것 또한 은유다. 나혼자만 늦고 나만 모르고 나만 도퇴되는 느낌을 받을 때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느껴질 때마다 우울하고 외로웠다. 엄청 열심히 살았는데 우물 안 개구리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조바심내고 초조해하고 안절부절해하며 미친듯이 일했다. 그 때 놓친 것은 무엇일까.

 

나만의 빛

 

그것은 늘 존재하고 있었다

 

기다림 속에

 

 

갑자기 반짝하며 내리꽂는다

 

 

그 찬란한 빛을 놓치지 않으려는

 

 

굳굳한 기다림,

 

 

오묘한 빛깔로

어느새 바뀌어 있는 나

 

 

겨울, 나무

김장성

정유정

 

나목이라고도 하지만 겨울 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다. 겨울, 나무라고 두 단어 사이에 쉼표를 넣어준 것은 더욱 좋다. 겨울이라 하고 숨을 잠깐 멈춰보자. 나무가지의 빈 공간을 통해 하늘이 보이며 숨이 트이게 된다. 겨울이 되어야만 보게 되는 나무의 진면목을 군더더기없이 드러내주는 그림책이다.

 

해뜨기를 기다리면서 소리내서 읽어 보았다. 그리고 창문밖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보통 잠이 들었다고 쉰다고 혹은 다음 해를 기다린다고 하는 이 순간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면,

 

 

삶도 마찬가지.

성과없이 기다리고 있어도

방향을 놓쳐 넋놓고 있어도

의지를 잃어 무기력해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도

이제 남은 것은 늙은 몸이어도

 

 

살아있는 한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걸 너무 못했다. 내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지인에게도 무섭게 다그쳤고 등을 돌렸고 손을 거두었다. 나도 버거운데 내 에너지를 뺏기는 것이 싫어 겉으로는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이면서도 속은 문드러졌다. 미안한 시절들이다.

 

미안함을 만회하고자 태도를 바꾸어 살아본지 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꽃과 잎과 열매에 마음이 더 가서 빈 나무만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그 조바심을 아직도 내고 있는지 겨울 나무 앞에 서서 묻는다.

800년이 넘어가는 나무를 우러르며 다시 마음을 다진다. 비교해서 섭섭해하지 말자. 지금 그대로가 최선이다. 비어서 여유롭고 숨을 쉴 수 있는 법. 가볍게 바람따라 흔들릴 때도 있어야 한다.

 

 

 

 

 

그 안에 나는 여전히 살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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